23.5.13

[Eastern Europe] (1) BUDAPEST (28 Dec 2011 - 02 Jan 2012)

오늘은 부다페스트로 이동하는 날이다. 아침 여덟시 반 비행기여서 새벽에 night bus를 타고 다섯시 쯤 Heathrow 공항에 도착했다. 이층버스 통유리 앞에서 밝아오는 해를 바라보며 런던을 떠나는 기분이 묘했다. 아쉬움이 큰, 뭐 그런...
수속을 마치고 잠시 대기하다 remote boarding을 위해 버스를 타고 비행기까지 이동했다. 비행기 기종이 작아서 그런가...? 비행기 탑승을 위해 버스를 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튼 창문자리에 앉아 기내식을 즐기며 약 네시
간 정도의 비행 후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와 우선 인터넷으로 사전구매한 Budapest Pass (72h; HUF 8,300)를 찾았다. 교통편 뿐만 아니라 spot들에 대한 할인혜택도 많으니,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부다페스트를 탐방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딱인 pass! 어디든 개시일이 중요하니, 카드 뒷면에 써진 개시일과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공항을 나와 200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 후 지하철로 갈아타고선 Ferenciek tere에서 내렸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오자마자 눈인지 비인지 하여간 뭔가가 내리고 있었고, 서둘러 mtrip 어플을 이용해 사전에 예약해 둔 숙소 Ginkgo Hostel (6 mixed; 5 nights; HUF 22900)로 향했다. 숙소는 생각보다 아담하고 조용하며 깨끗했다. 직원분도 상냥하게 나를 맞이해 주었고, 일정 중간에 방을 한 번 옮겨야 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미안해하면서 대신 완전 조용하고 깨끗한 방을 주겠다는 약속을 해 주었다. 나야 뭐 땡큐지~









일단 짐을 풀기 위해 캐리어를 여는 순간, 더헉, 내 가방 한 쪽에 금이 가 있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툼이 넓지 않아 물건이 빠지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당장 캐리어 하나를 사게 생겼다. 예상치 못한 지출인데 이거... 일단 깨진 캐리어 사진을 잘 찍어두고, Wifi를 이용해 여행자 보험 가입한 곳에 메일을 보내 보상여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British Airways 쪽에도 글을 남겨 가방 파손과 함께 보상절차를 알려달라는 complain letter를 보냈다.
가방 깨진 것은 깨진 것이고, 일단 여행부터 해야지? ㅋㅋㅋ 배도 고팠고, 간단히 Pest지구 지형정찰도 하고(강을 기준으로 동쪽이 Pest지구, 서쪽이 Buda지구), 일단 몸풀기로 온천 한 군데를 갈 요량으로 간단히 짐을 챙긴 후 밖을
나섰다. 직원이 열쇠를 챙겨주며 '출입시에 현관문을 꼭 잠궈줘~'라고 당부에 당부를 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한 시간도 안되는 사이에 어느새 눈이 쌓이고 있었다. 내리는 눈과 거리의 새해맞이 장식들이 꽤나 멋있게 다가왔다. Vaci거리 반대편을 따라 쭉 올라가니 넓은 공터에 시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판에서 요리도 팔았는데, 돼지고기와 감자 등 야채를 볶은 요리를 반접시 시켜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사실 온천은, 내일부터 매일 하나씩 다녀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온천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는... 그 유명하다는 Szechenyi 온천에 입성! 입장료가 HUF 2700정도(Pass 할인가로 HUF 2560)였다. 직원에게 안내받은 라커에서 들고 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온천에 몸을 담그는데, 아하... 생각보다 미지근한 물에 약간은 실망했다. 야외 수영장 겸 노천탕은 바깥 날씨가 추워 가보고 싶지는 않았고, 사람이 너무 많아 왁자지껄했다. 물에서 유황(맞나?) 냄새가 나서 '아 이 물이 괜찮은 물이구나...' 한 것 말고는 뭐, 에이, 별로네... 하며 나가려는 찰나, 욕장 저 쪽에서 한국인 세 분이 온천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슬쩍 가서 말을 걸었는데, 너무도 반갑게 맞아주시는 게 아닌가!


한 30분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객들이 늘어놓는 수다가 다 거기에서 거기이겠지만, 그래도 다녀온 곳이며 여행의 소감이며 한국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와 같은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한 1년 가까이 배낭여행을 다니는 중이라는 한 형님이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가 없었다. 이렇게 헤어지긴 좀 아쉬운 느낌이 들어, 저녁이나 하시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자고 하셨다. 그 분들이 마침 숙소도 옮겨야 했는데, 내가 묵는 숙소를 소개해주고 하룻밤은 그렇게 함께 보내기로 했다.
헝가리에 왔으니 전통음식을 먹어줘야지? 굴라쉬를 비롯한 헝가리 음식을 저녁 메뉴로 정하고, 내 mtrip 어플의 도움을 받아 꽤나 유명한 (+늦게까지 문을 여는) 식당으로 향했다(spinoza cafe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생맥주
한 잔 기울이며 남자 네 명의 수다는 끝을 모르게 되었고, 영업종료시간이 다 되어서야 가게를 나왔다. 그래도 시간 가는 것이 아쉬웠던지, 숙소 가는 길에 캔맥주를 잔뜩 사서는 밤새도록 마셨다.





다음날 아침, 역시 이른 아침에 자동적으로 떠진 눈을 어찌할 수 없어 나갈 채비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자고 있었고, 내가 나간다고 깨우기가 좀 미안해서 쪽지에 내 연락처를 남겨놓고는 길을 나섰다. 오늘의 첫 여행지는 중앙시장. 아직 영업 전인 Vaci거리를 지나 아침부터 활기참이 넘지는 시장 입구에 다다랐다. 시장은 총 3층으로,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되어 있었다. 시장 안에서는 과일, 육류, 생선, 절임요리, 기념품까지 다양한 품목을 팔고 있었고, 특히 2층에는 선물용으로 좋은 머플러나 악세사리도 진열되어 있었다. 돌아다니는 중간에 먹을 과일을 두둑히 사놓고, 굴라쉬 한 그릇도 뚝딱 해주고, 절임음식의 향에 취해 시장을 빠져나왔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Buda Castle. 겔레르트 온천 뒤쪽으로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 겔레르트 언덕을 거쳐 왕궁으로 이동했다. 왕궁 내부 전시장과 그 옆에 있는 박물관은 Pass가 있으면 입장이 무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원체 미술 쪽에는 조예가 깊지 않은지라... 잠시 쉬다 화장실 좀 이용하고 바로 나오는 것으로~ 성곽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왕궁의 웅장함과 고풍스러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왕궁 외곽 산책로를 따라 여부의 요새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요새 2층 입장료가 HUF 200정도 되는 듯 했는데, 굳이 그 곳을 오르지 않고서도 Buda지구와 그 건너편 Pest지구의 전경이 아주 잘 보였다. 관광객들은 1층 2층 할 것 없이 많았고, 성벽 틈에서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는(...응?) 연인들도 제법 되었다.




오늘의 main spot 중 하나는 사실... 어부의 요새 근처에 위치한 와인하우스! 이게 뭔 된장질이냐 하겠지만,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즐겨보겠냐며 과감하게 선택한 일정이었다. Pass 할인도 되고 하니 더욱 매력적인 이 곳. 입장료 겸 체험프로그램 비용이 HUF 3800정도였다(할인 전). 와인 세 종류를 tasting하면서 각 와인에 대한 설명도 듣고 다른 테이블에 있던 관광객들과 수다도 떨면서 아주 흥미로운 시간을 보냈다. 맛을 본 와인 중 하나에 딱! 꽂혀 나올 때 바로 한 병을 사버렸다. 내가 먹을 지 선물을 할 지 고민이 되는구나~




약간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식히려 다시금 정처없이 걷기 시작했다. mtrip을 열어 다음 목적지인 Kiraly 온천으로 방향을 잡고 30분정도를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온천 입구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 조금 해멘 것 말고는 나름 괜찮았던 입성! 입장료를 지불하고(여기도 Pass 할인을 받아 HUF 1760), 영어가 전혀 되지 않으시는 직원 분의 안내를 받아 라커로 향했다. 전체적으로 Szechenyi보다 규모가 작고 그만큼 사람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라커도 목재 재질이고 온천의 온도도 높아 나에게 훨씬 만족도가 큰 온천이었다. 이번에는 수영복을 입지 않고 헝가리 온천의 전통을 따라 앞가리개(이게 이름이 뭐였더라...) 하나만 두르고 입장했는데, 이게 천 조각을 걸친 것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안 걸친 것도 아닌 것이 하여간 오묘한 기분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탕을 왔다갔다하며 언 몸도 녹이고 뭉친 근육도 풀어주는 사이, 문득 이 온천에 지금 남자밖에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되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Men's day. 헝가리의 온천은 남자와 여자가 입장할 수 있는 요일이 정해져 있다. Szechenyi같이 대외적으로 유명하고 큰 곳은 대부분 그런 구분이 없지만, 정말 local 온천들은 남여 구분이 있고, 특히 men's day에는 gay들이 많다고 한다. 원체 그런 것 별로 신경 안 쓰는 성격이라 혼자서도 잘 해요~ 이러고 탕에서 놀고 있었는데, 결국에는 샤워하고 나가려는 찰나 50대쯤 되어보이는 아저씨의 위아래로 훑어보는 부담스러운 시선과 온화한 미소(!)를 느끼고는 줄행랑쳤다 :-D 아우 짜릿해...


부다페스트 하면 야경이지! 국제학생증으로 할인받아서 크루즈를 예약했다 (HUF 3700). 샴페인 한 잔도 기념으로 준다길래 얼른 결제해버렸다. 슬슬 걸어 내려가니 어느덧 탑승시간이 되어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고 출발을 기다렸다. 겨울만 아니면 뚜껑 없는 배를 탈텐데... 아쉽지만 이것으로도 만족. 30분정도의 시간 동안 다뉴브강을 두 바퀴 돌면서 Buda지구와 Pest지구의 야경을 관람할 수 있었다. 사진이 실물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해서 그게 아쉬울 따름.




크루즈 투어를 끝내고 그냥 숙소로 돌아가긴 아쉬워서, 첫날 음식을 먹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과일을 넣고 끓인 와인을 HUF 300을 주고 한 잔 사들고(오늘 술로 점철된 하루구만!), 휘향찬란한 장식들 사이로 붐비는 시장통을 돌아다니며, 그렇게 밤을 또 보냈다.


다음날 아침, 평소처럼 중앙시장에 들러 현지인마냥 오늘 먹을 과일거리를 사고선 굴라쉬 한 그릇 해 주고 길을 나섰다. 생각보다 관광spot들이 문을 늦게 열어서, 원래 가보기로 했던 시나고그나 테러하우스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다행히 National Museum은 일찍부터 문을 열길래 (학생할인 HUF 550) 몸도 녹일 겸 입장. 역시 예술품엔 큰 감흥이 없어!!!


무작정 거리를 걷다 배가 고파졌다. 아까 지하철역 어귀에서 받았던 쿠폰 하나가 번뜩 생각났고, 호화로운 점심식사를 위해 WASABI로 이동했다. 한국의 회전스시집과 유사한 곳인데, 스시 말고도 많은 종류의 음식들이 있었다. 한 끼에 HUF 4490이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이럴 때 잘 먹어야지 후훗. (분명 할인받아서 더 싸게 지불했는데, 영수증이 없네 어디 있는지?)



Pass 하나 들고 정처 없이 이리 저리 걷다가 트램을 타다가 버스를 타다가 지하철도 타고 아주 부다페스트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온천순례 또한 계속되었는데, 오늘은 Rudas 온천으로 택했다. Men's day따위는 개의치 않아...라고는 마음먹었지만 그래도 긴장되긴 하더라. 여기는 Pass 적용이 안되었나? 여튼 HUF 2240을 내고 온천에 입성해 뜨끈~한 물에 몸을 녹이고 상쾌하게 나왔다. 어제 갔던 Kiraly만큼 물온도도 적당하고 가격도 괜찮고. 다리를 건너며 또 그렇게 부다페스트에서의 하루를 보냈다.




2011년의 마지막. 곧 다가올 고난의(!!!) 2012년을 대비하고자 고급스러운 아침을 먹기로 했다(무슨 연관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쨌든 ^^) 부다페스트가 또 cafe로 유명한 지역이 아니겠어요~? 가장 고급스런 cafe 중 하나인 New York Cafe로 향했다. 물론 설레는 마음에 영업 개시도 전에 도착해서 또 주변을 정처없이 구경하긴 했지만... 가히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실내도 고급스럽고 점원도 친절했고 커피 위에 올라간 우유거품도 고소했고... 무엇보다 브런치 메뉴가 기가 막혔다! 베이컨+계란+방금 구운 빵+샐러드+치즈!!! 이건 뭐, 나를 위한 메뉴지 진짜. "으흠~"소리를 하도 내며 먹어서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보더라만.




손에 꼽을만큼 만족스러운 브런치를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영웅광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 사람들이 많았고, 가족단위로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거나 산책을 하고 있었다. 어딜 가나 강아지들은 항상 있었다. 최대한 현지인처럼 유유자적 공원을 산책하다가, 애초에 여행을 계획할 때 꼭 가보고자 했던 Szentendre로 이동.




Batthyany Ter로 이동해 표 두 장을 사고 Szentendre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30분정도 기차를 타고 가니 도착한 Szentendre는 한적한 시골이었다. 약간 휑하기도 해서 조금은 실망하려는 찰나...





안쪽에 시장이 있었는데, 여기가 아주 인상깊었다. 골목골목에 숨은 상점들도많았고,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사람들이 아주 바글바글했다. 특히 숯에 구운 빵이 대박이었는데, 향에 이끌려 무심코 맛보았다가 두 롤을 사서 돌아다니다가 다 먹고, 그것도 모자라 두 롤을 더 사들고 숙소로 갔다. 이 맛은 어떻게 형용이 안된다... 쫄깃 촉촉 달콤쌉사름 고소 와우 이건 뭐지 진짜???




선물할 토카이 와인 두어병과 작은 기념품들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 날 숙소의 룸메이트였던 슬로베니아 청년 셋과 밤새도록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난다. 자기들이 'Jack'을 가지고 있다며 한잔 하자고 자꾸 꼬시길래, 나야 사양할 이유가 없어 조인했더니 웬걸, 잭다니엘 1리터짜리 병을 꺼내는 게 아닌가!!!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사는 이야기를 한참동안 주거니 받거니 했다. 결국 그 무리들은 밤을 불태우기 위해 클럽으로 향했고, 나는 새해를 맞는 폭죽소리를 들으며 아주 푹~ 잤다 ㅋㅋㅋ
다음날 아침, 사실상 크게 할 일이 없는 하루여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도 하고 방 안에서 뒹굴거리며 쉬었다. 여지껏 여행와서 이렇게 여유로운 하루는 없었다 허헛. 아, 우연찮게 유랑에서 생선스프 맛있게 하는 집을 알게
되어서, 점심 겸 저녁을 거기에서 해결하려고 갔었다. 음... 내 입에는 그다지... 그저 경험을 하나 쌓은 것으로~ 트램을 이용해 아직 내 발길이 닿지 않은 지역들을 걷고 또 걸어 눈 오는 부다페스트의 음울함(!!)을 만끽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몇일 전 새로 산 캐리어에 짐을 꾹꾹 눌러담고 공항으로 향했다. 기내식은 여전히 맛있었고, 눈이 쌓여 비록 비행기는 지연출발했지만 환승차 다시 들른 Vantaa 공항 또한 신선했고(사우나나 한 번 들어가 볼 걸...), 비행기에서 내리기 싫어하는 나도 여전했다. 다음이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여전했고, 그럼에도 다음을 기약한다. 언제나 설레고 아쉽고 또 그리워지는, 그런 것이 여행의 묘미.